교양
허영구(전민주노총 부위원장)
등록일 : 2024.05.02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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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4주년 노동절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.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동절 대회에 노년알바노조(준) 깃발을 들고 조합원 몇 명과 함께 참석했다. 퇴직한 노동자나 노년 노동자들의 대오는 보이지 않는다. 현재로서는 조직되지도 않았고 낄 공간도 없다. 

 

양회동열사 정신 계승, 윤석열정권 퇴진,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내세웠지만 주 슬로건은 윤석열 정권 퇴진이다. 세계노동절 대회 정신에 비춰보면 매우 부차적인 내용이다. 자본주의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핵심이 빠져 있었다. 

 

부패정치•경제개혁, 8시간 노동제 쟁취, 근로기준법 개악저지, 군비확대와 대증세 반대, 원전반대를 내 걸고 열린 일본 교토지역 노동절에 연대사를 보낸 입장에서 더더욱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컸다. 무대에서는 인터내셔널가 합창이 울려퍼졌지만 대오나 집회모습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. 그러나 이제는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. 이제 다른 방식의 노동절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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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창의문/윤동주문학관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. 노동절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붐빈다. 마트에 들러 빵과 음료수 한 병 산 뒤 창의문에서 출발해 북악산에 오른다. 며칠간 황사와 미세먼지 등으로 흐렸는데 오늘은 화창한 날씨다. 주변의 봄기운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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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곽을 끼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. 북쪽으로 북한산 줄기의 스카이라인이 선명하다. 족두리봉에서 시작해 향로봉, 비봉, 사모바위 문수봉, 보현봉, 형제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. 더 올라갈수록 평창동 고급스런 주택지가 북한산 허리를 두른 것처럼 위치하고 있다. 어떻게 저 높은 것까지 부촌이 형성됐을까 싶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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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르는 도중에 두 곳의 쉼터가 있는데 정상 바로 아래 쉼터에서 사람들이 약간의 땀을 훔치며 쉬고 있다. 서울 도심에 있는 얕은 산이라 젊은이들이 많다. 나도 의자에 앉아 음료수 한 잔 마시며 피로를 푼다. 두 주를 건너뛰고 오른 산이라 짧은 거리인데도 몸이 무겁다. 그러나 5월의 봄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면 정상에 서게 된다.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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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상에는 백악산, 북악산 두 개의 표지석이 서 있다. ‘과거 이름은 백악 혹은 면악이라 불렸지만 남산과 대비되는 뜻으로 북악’이라 변경했다고 한다. 처음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“산 이름이 두 개네?”하고 반응한다. 나는 그 말을 듣고 북한산도 원래 삼각산으로 불렀다고 훈수를 둔다. 

 

드문드문 나무들에 가려 있긴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면 서울도심과 주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. 오후 시간에 오른 산이라 해는 석양의 빛깔로 변하며 서해쪽으로 향하고 있다. 그 사이로 구름들이 뭉쳤다가 흩어진다. 인증샷 몇 장 찍고 하산한다. 

 

올랐던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. 올라올 때 성곽을 열심히 찍고 있던 한 등산객이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. 내 눈에는 퇴직 후 취미생활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. 금방 창의문에 당도한다.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등산로 입구에서 표찰을 받아 목에 걸고 올랐지만 지금은 입산 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자유롭게 오를 수 있다. 

 

512회, 북악산, 2024.5.1.수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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